2009년 07월 23일
왕따/이지메에 관한 단견.
'나와 다르다', '나와 맞지 않다'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을 내가 개인적으로는 싫어하고 멀리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 그룹 내에서 여러 사람이 특정 사람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고 멀리하면 같이 짜고 그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도 그것은 폭력이 된다. 내가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되면 그에 따른 benefit도, obligation도 생긴다. 그 obligation 중 하나는 그룹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가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정말 악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최대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내가 그 사람에게 적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을 못하겠으면 내 obligation을 다하지 못하는 만큼 그 사람을 그룹에서 왕따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룹의 benefit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
개개인이 하면 비열하지 않은 행동도, 그런 개개인의 행동이 모이면 비열한 짓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집단 폭력의 속성이다. 이런 류의 집단 폭력은 주변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겪어볼 수가 있다. 어떤 조직이든간에 가장 특이한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단 폭력은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이 살면서 은연 중에 그런 폭력을 휘두르고 다닌다는 사실조차 지각하지 못한다.
나는 평균적인 사람보다 좀더 나은 환경에서 좀더 나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써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사회적 책임이 있다. 내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이득을 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일정부분을 환원할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또 바꿔 말하자면 99명이 그렇게 행동을 하고 괜찮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명박이 형처럼 300억을 때려박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박이 형은 300억을 대통령 당선되는 대가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 수준에서 뇌물을 바친 것이지, 그걸 가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운하며 기업인들도 따라해라라는 것은 개소리이다. 300억 기부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가성 기부를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블리제는 obligation, 즉 자기가 이미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 향후에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성격의 이득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이미 고귀한 의무가 아닌 것이다.
회계적으로 보자면, 대차대조표에는 차변(왼쪽)에는 자산과 손실의 증가를, 대변(오른쪽)에는 부채, 자본과 수익의 증가를 기록하게 되어 있고 차변과 대변은 항상 일치해야 한다. 내가 노력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자산화한 부분은 부채의 증가이다. 그 부채의 계정과목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노력하지 않고 획득한 자산을 수익의 증가로 처리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는 수익으로 잡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그것은 '잘난 집안에서 태어나지 그랬어' '머리 좋게 태어나지 그랬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잘난 사람들이 잘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 기회를 주지 않고 난 잘났으니까 내 몫을 다 챙겨먹겠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10년만 더 가면 제 2차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 등은 그 전주곡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한 2~3일 전부터 웬지 찜찜하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싶었더니 내가 딱 2~3일 전부터 위에 언급한 비열한 짓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북해야, 그렇게 살지 말자. 응?
# by | 2009/07/23 08:32 | - 思惟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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